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 생물방제균 Trichode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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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처음으로 농업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도 병해충의 위협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4,500년 전 수메르 시대에도 진드기 방제를 위해 유황 화합물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농약의 역사는 깊다.
-보르도액을 제조하여 실제 나무에 사용한 사진
근대적 화학농약은 1885년 포도 노균병을 방제하기 위해 개발된 보르도액과 함께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강력한 효과를 가진 다양한 화학농약이 생산되자 병해충 방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2차대전 중 연합군이 DDT를 뿌려 소독하는 장면
그 중 살충제 DDT는 농업과 보건 양쪽에서 활약하며 말라리아 퇴치에 전례 없는 기여를 해 해충에 대한 인류의 완승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기도 했다.
-DDT의 위험성을 알린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DDT가 수십 년 이상 환경에 잔류하며 생태계를 교란하고, 인체에도 축적된다는 문제가 드러나면서 결국 퇴출되고 만다.
이렇듯 화학농약은 뛰어난 효과만큼이나 환경과 안전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40%의 작물 손실이 병해충에 의해 발생하고 있기에, 육종과 검역 등의 다른 대응책이 발전했음에도 화학농약을 전면적으로 대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재는 사용량 감소를 목표로 한 여러 보완책들이 함께 연구되고 있다[1].
그중 하나가 생물방제로, 미생물 자체 또는 미생물에서 유래한 성분을 이용해 병해충을 방제하는 기술이다.
-생물방제재로 이용되는 방선균의 효과
현재는 세균, 균류, 바이러스 등 다양한 천적 미생물이 이용되고 있으며, 화학농약에 비해 환경오염의 위험이 적고 병원균과 공진화하기 때문에 내성이 발생할 가능성도 비교적 낮다는 장점이 있다.

-배지에 배양중인 트리코더마균과 현미경상 사진
-트리코더마균을 제형화하여 시판중인 생물방제재
대표적인 생물방제균으로는 Trichoderma 속 균류가 있다.
트리코더마균은 전 세계 토양에 널리 분포하는 부생성 균류로, 이를 고농도로 배양·제형화하여 재배지에 처리하면 병원균보다 먼저 식물 뿌리에 정착해 보호막을 형성하고 식물 면역을 활성화하며, 병원균이 이용할 영양분을 먼저 차지하는 등 다양한 효과를 보인다.
-땅콩 병원균인 아스퍼질루스균의 균사를 휘감아 공격하는 트리코더마균
그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능력은
균기생(Mycoparasitism)이다.
트리코더마균은 병원균의 균사에 자신의 균사를 감아 기생한 뒤 다양한 분해효소를 분비해 상대를 사멸시킨다.

-균류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키틴
-균류의 키틴을 분해할 수 있는 키티나아제인 Chit46
이 분해효소 가운데 가장 잘 연구된 것 중 하나가 Chit46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Chit46이 키틴을 분해하는 효소인 키티나아제라는 것이다.
키틴은 대부분의 균류 세포벽의 주성분이므로, 병원균을 공격하기 위해 키티나아제를 사용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트리코더마 역시 키틴을 가지는 균류이다.
그렇다면 대체 트리코더마는 어떻게 자신의 키티나아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까?
이는 트리코더마가 오랫동안 생물방제균으로 활용되어 왔음에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의문이었고, 많은 연구자들이 그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었다.[2]

-세 그룹으로 분류된 균류의 키티나아제들
2021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균류의 키티나아제를 계통발생학적으로 A·B·C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제안했다.
여기서 chit46은 A형 키티나아제에 속하는데, 이 분류군의 특징은 효소에 CBM(Carbohydrate-Binding Module)이 없다는 점이다[3].
이에 다른 연구진은 해당 연구를 바탕으로 CBM의 부재가 트리코더마의 자기방어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 실험에 들어갔다.
*CBM: 효소가 기질에 부착하는 것을 돕는 단백질의 특정 부분
-주요 식물병원균에 각각 무처리, chit46 처리, CBM3 부착 chit46을 처리한 결과.
무처리 대비 중앙으로부터 성장한 반지름 차이로 억제 효과를 알 수 있다
해당 연구진이 2026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유형의 CBM(3,6,26)을 인위적으로 부착한 변형 Chit46을 제작하였다.
실험 결과 WT와 변형 chit46을 처리할 시 모두 병원균을 억제했지만, CBM이 부착된 변형 효소가 병원균을 더 강하게 억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WT: 야생형(Wild type) 별도의 조작을 하지 않은 원본 상태

-트리코더마균을 대상으로 동일한 처리를 한 후 관찰한 사진.
빨간 화살표는 손상된 균사를 표시한 것
또한 CBM 부착 chit46은 트리코더마 자신의 생장도 억제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즉, CBM의 유무가 트리코더마의 자가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완전하지 않았다. CBM이 없는 원래의 chit46도 다른 균류는 여전히 잘 분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트리코더마가 자기 자신만을 보호하는 또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Δ2:QID74 생산 불가 균주,T2:QID74 과량 생산 균주
Δ2균주는 분해효소에 대응하지 못해 거의 녹아내린 반면, T2균주는 문제없이 균사를 생성해 자라고 있음
그 실마리는 2007년 발표된 다른 연구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연구에서는 트리코더마가 특이적으로 가지는 세포벽 단백질인 QID74가 다양한 분해효소에 대한 저항성을 부여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4].
이에 연구진은 QID74가 chit46에 대한 자기방어에도 관여할 것이라는 추가 가설을 세웠다.
-chit46 WT과 CBM 부착 변형체를 처리했을 시 키틴 분해능 억제율
WT 처리시 키틴 분해능 억제가 잘 되지만 CBM 변형체들은 거의 억제하지 못함(=그대로 세포벽이 분해됨)
이를 검증하기 위해 QID74와 WT 및 CBM 부착 변형 chit46의 결합력을 비교한 결과, WT가 변형체보다 훨씬 강하게 결합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WT에서는 QID74가 키틴보다 먼저 chit46과 결합해 키틴 분해를 막지만, CBM이 있는 변형체는 QID74와 잘 결합하지 못해 세포벽의 키틴에 직접 달라붙어 자가분해가 일어난다고 해석했다.
연구에서는 이를 chit46을 화살, QID74를 방패에 비유한 'Arrow-Shield model'로 설명하였다.
즉, 자신의 세포벽에는 방패(QID74)가 먼저 붙고, 병원균의 세포벽에는 화살(chit46)이 먼저 붙는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트리코더마의 chit46은 CBM이 없어 자신의 세포벽에 강하게 달라붙기 어렵고, 설령 세포벽에 도달하더라도 QID74가 경쟁적으로 결합해 키틴 분해를 막는다.
이와 같은 메커니즘 덕분에 트리코더마는 병원균을 공격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해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5].
-농약관리법에 의해 농약에 포함되는 생물방제재(천연식물보호제)
생물방제재는 법적으로는 농약으로 분류되지만, 그 이전에 살아 있는 생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다룬 트리코더마와 같이 아직 작용 기작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활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이로 인해 실험실에서 확인된 효과가 실제 농경지에서는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복잡성은 반대로 기존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트리코더마균에 Chit46 WT 처리한 뒤 비교한 사진
이번 연구에서도 트리코더마의 자기방어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또 하나의 특이한 결과가 확인되었다.
앞서 트리코더마에 WT chit46을 처리했을 때, 단순히 아무 영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균사의 생장과 포자 형성이 촉진된 것이다.
아직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를 응용해 트리코더마를 배양하거나 생물방제균을 생산할 때 초기 생장을 촉진하는 기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생물방제 연구는 이처럼 생명체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기초과학이 새로운 농업 기술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분야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했던 생물의 능력이 밝혀진다면, 더욱 효과적이고 친환경적인 병해충 관리 기술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실험에 사용된 균주는 Trichoderma harzianum
*정확한 정보는 참고문헌 참조
1.Ficke, A., Cowger, C., Bergstrom, G., & Brodal, G. (2018). Understanding Yield Loss and Pathogen Biology to Improve Disease Management: Septoria Nodorum Blotch - A Case Study in Wheat. Plant disease, 102(4), 696–707.
2.Gruber, S., & Seidl-Seiboth, V. (2012). Self versus non-self: fungal cell wall degradation in Trichoderma. Microbiology (Reading, England), 158(Pt 1), 26–34.
3.Wang. C., Zeng, Z. Q., & Zhuang, W. Y. (2021). Comparative molecular evolution of chitinases in ascomycota with emphasis on mycoparasitism lifestyle. Microbial genomics, 7(9), 000646.
4.Rosado, I. V., Rey, M., Codón, A. C., Govantes, J., Moreno-Mateos, M. A., & Benítez, T. (2007). QID74 Cell wall protein of Trichoderma harzianum is involved in cell protection and adherence to hydrophobic surfaces. Fungal genetics and biology : FG & B, 44(10), 950–964.
5.Deng, J.-J., Chen, Z.-F., Zhang, M.-S., Liu, J., Wang, Z.-L., Li, J.-Z., Wu, S., & Luo, X.-C. (2026). Protein QID74 protects the cell wall of Trichoderma from degradation caused by its own chitinase, which lacks a carbohydrate-binding module. mBio, 17(5), e0001826.
출처: 싱글벙글 지구촌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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