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의 단두대 매치, 마케도니아 명칭 분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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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의 단두대 매치, 마케도니아 명칭 분쟁 (3)
사실, 프레스파 합의를 읽다 보면 ‘대체 북마케도니아는 저걸 왜 받아들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답은 단 하나다. 그들은 NATO, 유럽연합에 가입하고자 했다.
프레스파 합의 이후 그리스 정부는 비토권을 실행하겠다고 끊임없이 위협하며 외교적 레버리지로 삼고 있을 뿐, 이를 실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2026년 현재까지 북마케도니아는 NATO에 가입했을 뿐 유럽연합에는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잔인하다. 북마케도니아의 현실이 가입 조건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가입 기준인 코펜하겐 기준은 세 가지로 구성된다. 정치적 기준, 경제적 기준, 법적 기준. 먼저 경제적 기준을 보자. 27년간의 봉쇄는 국가의 역량을 고갈시켰다. 2026년 현재 북마케도니아의 1인당 GDP는 11,530달러에 불과하다.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 중 가장 1인당 GDP가 낮은 나라가 불가리아로, 23,850달러다. 즉 북마케도니아의 소득수준은 가장 소득수준이 낮은 유럽연합 회원국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만 안 좋은 건 아니다. 공산권 특유의 부패도 또한 해결되지 않았다. 국민의 사법부 신뢰도는 1%라는 신화적인 수치를 찍었다. 민주주의는 불안정하다. 도저히 정치적 기준과 법적 기준을 만족시킬 상황이 아니다.
NATO에 가입하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사실 북마케도니아에게 NATO 가입은 ‘서방권 인증’ 이상의 실익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GDP 대비 2%의 국방비 기준 때문에 가뜩이나 없는 예산을 국방비에 할애해야 한다. 북마케도니아에게 진지하게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나라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결속 자금을 지원해줄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것이다. 결국 합의 체결 이후에도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그리스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그들은 처음부터 ‘비토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데 합의한 것이지 ‘북마케도니아를 가입시켜 주겠다’고 한 적은 없다. 사실 그리스에겐 그럴 권한도 없다.
그러나 프레스파 합의 체결 당시 북마케도니아는 마치 유럽연합 가입 티켓을 쥔 것처럼 환호했다. 왜 그랬을까?
[유럽연합 브뤼셀 본부]
27년의 대봉쇄 동안, 북마케도니아 정치인들은 북마케도니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자격이 이미 되어 있는데 그리스의 비토권으로 인해 가입하지 못하는 것처럼 선동했다. 그 결과 국민들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2026년 1월 발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약 40%는 ‘자국은 이미 유럽연합 가입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즉 ‘우리는 자격이 있는데 인접국의 방해 때문에 못 가입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과 견해는 다르다. 그들은 국가의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상황을 낙관해버렸다.
물론 총리였던 조란 자에브는 조금은 더 그럴싸한 기대를 가졌다. 그는 그리스와의 분쟁을 해결하면 그것 자체가 가입 동력이 되리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즉 ‘너희 합의한 걸 봐서 북마케도니아의 가입 자격이 좀 뒤떨어져도 봐줄게’를 기대한 것 같다. 전부 가정형으로 쓰는 이유는, 이렇게 생각한 것 같다는 정황증거만 무성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기대’는 전혀 합의나 각서의 형태로 보장받지 못했다. 그러니까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신나게 박수를 치며 두 나라의 등을 두드려 준 뒤 그냥 가버렸다.
그래도, 그래도 이제 방해국이 없는 만큼 북마케도니아 자신들에게 달린 것이 아닐까? 제도를 개혁하고, 하청기지로나마 산업을 육성하면 언젠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미약한 기대조차 밟아버리며, 2019년경 초신성처럼 두 번째 빌런이 나타났다.
불가리아. 그들은 그리스를 벤치마킹하여 세 가지 조건을 걸었다.
불가리아인을 국가의 공식 구성 민족으로 인정할 것.
북마케도니아어가 불가리아어의 방언임을 인정할 것.
북마케도니아 독립 영웅들(고체 델체프 등)이 사실 불가리아인임을 인정할 것.
외교조약이라기보단 폭거에 가깝다. 그리스는 ‘너희들의 정체성이 사실 그리스가 아님을 인정하라’고 하며 펄펄 날뛰었지만, 불가리아는 ‘너희들의 정체성이 사실 불가리아임을 인정하라’면서 펄펄 날뛰는 것이다. 당연히 이쪽이 몇 배는 상대하기 어렵다. 그리스는 그리스에 흡수되라고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불가리아는 불가리아에 정신적으로 흡수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가리아는 2020년 공식적으로 유럽연합 가입 협상 시작에 대해 비토를 날렸다. 결국 가입 심사는 시작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자 의장국 프랑스는 이 상황을 중재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불가리아의 요구 중 일부를 인정할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헌법에 불가리아인을 국가 구성 민족으로 명시하면 즉시 유럽연합 가입의 세부 심사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자에브 이후의 코바체프스키 정부는 이 조건을 수용하고 헌법을 개정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루에프스키가 속했던 야당인 VMRO-DPMNE가 굴욕 외교라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2026년 현재까지도 이 헌법 개정안은 북마케도니아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급할 것이 없다. 이미 그리스가 27년간 자신들은 큰 타격을 받지 않으며 버틴 끝에 풍성한 수확을 가져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제 불가리아는 북마케도니아가 헌법을 개정해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북마케도니아는 현재 극심한 내분에 시달리고 있다. 불가리아의 요구까지 수용해서 헌법을 개정한 뒤 유럽연합 가입 심사를 진행하자는 쪽이 있고, 가망이 없으니 포기하고 세르비아나 터키에 붙자는 쪽이 있다. 솔직히 말해 어느 쪽이든 암담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마케도니아인 디아스포라]
청년들은 암담함을 피부로 느끼고, 자국이 유럽연합 국가가 되는 것을 기다리는 대신 유럽연합 국가로 발길을 돌렸다. 독립 이후 지난 30년간 약 50~70만 명의 북마케도니아인이 해외로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북마케도니아의 현재 인구는 180만 명이니, 인구의 1/4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대들보인 청년층이 사라져, 북마케도니아는 노인만 사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바빌론의 후예 이라크를 강조하던 프로파간다]
민족을 흔히 ‘상상된 공동체’라고 한다. 그러나 이건 ‘어차피 어느 나라건 민족 정체성은 상상에 불과하니 네 멋대로 지어내고 당당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민족 정체성은 현실에 닻을 내리고 있어야 현실에서 수용될 수 있다.
이를테면,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는 바빌론의 후예’라고 주장하며 바빌론을 복원했다. 그러나 이라크 민중은 이걸 외면했다. 이라크인들은 무슬림이며, 아랍어를 쓴다. 그러나 바빌론인들은 마르두크를 숭배했으며, 아카드어를 썼다. 현재와 도대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서사로 끌어오면, 인간은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민족 정체성을 세우려면 역사에서 민중이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이야기를 찾아내야 하며, 이야기를 찾은 후에도 ‘그래서 이것이 도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라는 의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민족 정체성을 세우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근대적 민족 국가로 이행하기 위해 반드시 성실하게 해나가야 하는 과정이다.
[<그리스도를 애도함>, 1164년, 오흐리드, 북마케도니아. 비잔틴 예술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북마케도니아는 오흐리드(Ohrid)를 가지고 있었다. 오흐리드는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였고, 슬라브 문화의 산실이었다. 오흐리드에서는 비잔티움이 슬라브와 만나 찬란한 문화가 꽃피었다. 서기 886년에 세워진 오흐리드 문학 학교에서는 성 클레멘트와 나움이
키릴 문자
를 만들었다. 지금 수억 명이 매일매일 사용하고 있는 키릴 문자 말이다.
자신들과 연관성이 떨어지던 알렉산드로스를 정체성으로 삼으려던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했으며, 북마케도니아가 알렉산드로스 정체성에 매달리는 사이 오흐리드 이야기는 불가리아가 가져가 버렸다.
[성 클레멘트. 키릴 문자의 창시자.]
이제 불가리아는 오흐리드에서 꽃핀 문화, 특히 키릴 문자를 자신들의 것으로 홍보한다. 불가리아 제국의 땅이었던 오흐리드에서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현대 불가리아 공화국의 것이라는 논리다. 오흐리드는 분명히 현대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의 땅이기에 이건 논쟁의 소지가 있었다. 그러나 북마케도니아는 불가리아와 논쟁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를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십 년에 걸쳐 현대 불가리아 공화국의 서사는 지배적인 서사가 되었고, 불가리아는 자신들의 땅이 아닌 오흐리드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에 편입하는 데 성공했다. 성 클레멘트와 나움도, 오흐리드 문학 학교도, 그리고 키릴 문자도, 이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불가리아 것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북마케도니아 이야기는 끝이다. 발칸은 언제나 아수라장이다. 그런 곳에서 하는 외교는 으레 서로의 목숨을 걸고 벌이는 일대일 결투가 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발칸 외교의 논리를 상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서유럽 국가가 내미는 외교적 요구와 발칸 국가가 내미는 외교적 요구 사이에는 뭔가 본질적인 수준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 국가는 기본적으로 민족국가다. 서유럽 국가가 구사하는 복잡한 교란을 한 꺼풀 벗기고 나면, 기실 서유럽 국가와 발칸 국가의 요구는 그 성질이 아주 비슷하다. 운영 체제가 똑같기 때문이다.
발칸 국가의 요구는 다만 민족주의의 원형을 깔끔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렇기에 발칸 외교를 들여다보는 것은 민족주의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우리가 발칸 외교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마케도니아 명칭 분쟁 시리즈는 4편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재밌게 읽어준 수많은 갤럼에게 감사드립니다.
곧 <근대 그리스 민족의 탄생> 시리즈로 돌아오겠습니다.
출처: 백악관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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