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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미식축구 단 한 경기도 안 뛰고 1라운드 지명 받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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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엠비아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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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수 이름은 에릭 스완. 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선수는 대학에서 미식축구 한 경기도 안 뛰고 NFL 드래프트 1라운드 6번픽 지명 받은 선수다. 그러면 어떻게 저게 가능한건지 알아보도록 하자. 에릭 제로드 스완은 1970년 8월 16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작은 마을인 파인허스트에서 태어났다. 파인허스트는 미국 골프의 성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부유한 마을에 속했지만 회계사 겸 구매 대행사 직원으로 일하던 아버지와 고등학교 특수교육 교사인 어머니의 가정은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 속했으며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부모님 덕분에 스완은 파인허스트 지역에서 샌퍼드라는 작은 마을 공동체에서 자라났다. 스완은 어릴 적부터 아주 키우기 까다롭고 어려운 아이였다. 어릴 적부터 통통하고 체구가 크던 스완은 평소 활발하고 산만해서 병원에서 심한 ADHD를 진단 받았으며 그로 인해 스완은 어릴 적부터 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어찌해야 하나 스완의 부모는 고민만 늘어가고 있었다. 이때 스완의 외할아버지가 당시 어린 애 치곤 체격이 크던 스완을 보고는 저런 애의 넘치는 에너지를 태워버리게 미식축구를 시키라고 조언을 했고 이 조언을 스완의 부모가 받아들이면서 스완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인 미식축구를 접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미식축구를 접하고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건 스완이 웨스턴 하네트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스완은 이미 190cm, 210kg의 거구 순발력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준비된 인재였으며 그 덕분에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 팀에서 DE, DT 포지션의 디펜시브 라인맨과 육상부의 투포환, 원반 던지기 선수였다. 그리고 그 때부터 스완의 운동선수로서의 천부성이 드러나기 시작하게 된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스완은 그냥 살집 많은 아이였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좋은 체격 조건으로 인해 운동부에 들어가면서 몸이 살집에서 근육질로 바뀌게 된 것이다. 게다가 육상부에서 투포환과 원반던지기를 하면서 손기술, 순발력을 기를 수 있었다. 이미 고등학교 시니어 시즌에 투포환, 원반 던지기를 모두 주 대회에서 준우승할 정도로 실력이 있었고 미식축구 팀에서도 3학년 시즌부터 아예 상대 오펜시브 라인을 통째로 구겨버린 채 쿼터백에게 달려든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스완의 천부적인 재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1988년 일찍이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넘어 전국구 스카우트들의 눈에 들기 시작했으며 주에서 가장 뛰어난 고교 유망주만 초청되는 Shrine Bowl 경기에 초청되어 선발로 뛸 정도로 높이 평가받았다. 참고로 스완 직계 가족에는 그 누구도 운동 관련해서 뛴 적이 없었으며 단지 평범한 체격을 가진 집안이었다. 하지만 스완은 그 가족 중 거의 돌연변이급으로 운동 재능을 가진 채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힘숨찐을 했던 것이다. 암튼 3학년 때부터 일찍이 주에서 가장 천부적인 운동 능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스완 앞에 무려 99개의 대학에서 장학금 오퍼가 오게 된다. 그리고 그 중에서 스완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구애한 학교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가 있었다. 애초에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유년기를 모두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자라났기에 스완 역시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로의 진학을 결정한다. 그래서 노스캐롤라니아 주립대와 스완 간의 진학 의항서까지 모두 서명까지 완료하고 이제 진학 확정만 하면 스완의 대학 커리어가 마침내 시작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 생기며 스완의 앞길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결과로 이어진다. 앞서 언급했겠지만 스완은 어릴 적부터 아주 심각한 ADHD를 가지고 있어 학업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NCAA는 1986년 가을학기부터 Proposition 48이라는 규정을 실행하기 시작했는데, 이 규정에 의하면 D1 대학교에서 신입생이 운동 경기에 출전하고 장학금을 받으려면 다음 조건을 만족해야 했다. 1. 고등학교에서 지정된 핵심 과목 최소 11~16개 이수 2. 고교 내신(GPA) 최소 2.0 이상 3. SAT 최소 700점 또는 ACT 최소 15점 등의 표준화 시험 최저 기준을 충족 즉, 2.0 GPA 이상 SAT 700 점 이상 받아야지 장학금 받으면서 선수 겸 학생으로서 학교에서 뛸 수 있었다. 당시 스완의 GPA 성적은 2.7로 이 부분은 문제 없었고, 과목 이수 역시 문제가 없었다. 문제점은 마지막 항목인 SAT 시험이었다. GPA 2.7 정도 받을 성적이면 SAT 700점은 문제가 아니였지만 심한 ADHD와 동시에 스완의 어머니의 말로는 심한 시험 불안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시험지 앞에서만 있어도 패닉 증세가 왔다고 한다. 그래도 Proposition 48 규정에 들어야 신입생으로서 장학금 받으며 운동할 수 있었기에 1988년 가을 스완은 무려 8번이나 점수를 맞춰가려고 SAT 시험을 보게 된다. 하지만 최고 점수는 최저 기준에서 딱 20점 모자른 680점이었고 결국 에릭 스완은 대학 규칙상 학업 부적격자 판정을 받음과 동시에 장학금을 받으며 운동할 수 없게 된다. 동시에 진학도 사실상 물거품이 된 셈이다. 이후 인터뷰에서 스완이 회상하기를 Proposition 48 대상자가 되는 건 세상으로부터 공부를 못하는 멍청한 운동선수라는 낙인을 찍히는 거 같아 너무 굴욕적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래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측과 스완의 어머니는 스완의 대학 진학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학교에 입학한 후 아카데믹 레드셔츠 제도를 통해 수업을 이수하면서 모자란 성적을 매우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특히 특수교육 교사인 어머니는 스완의 미래를 걱정해서 무조건 대학 진학을 하길 바라는 입장이었다. 얼마나 진학을 바랬냐면, 학교에서 아카데믹 레드셔츠 제도로 1년 쉬는 걸 원치 않아한다면 전문 대학(JUCO)이나 예비 학교(Prep School)에 진학하여 학업 보충 후 다시 도전하자고 간청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8번이나 시험 봤는데도 성적이 신통치 않은데다가 규정으로 인해 자신은 멍청한 선수라는 인식으로 스완은 크게 좌절해 있었으며 더 이상 학업 관련해서는 신물이 났기에 학교와 어머니의 제안을 모두 거절한 채 지역 내 웨이크 테크라는 전문 학교에 이름만 걸어둔 채 집에서 가출을 택한다. 스완은 노스캐롤라이나 주 박람회장에서 정비공으로 취업하여 말 배설물 치우고 놀이기구 고치고 시급 5달러 받는 막노동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부모님의 지원을 끊고 노동판을 전전하면서도 여전히 활발함을 잃지 않던 스완이었으며 여전히 미식축구에 남은 미련 때문에 매일 퇴근 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체육관, 운동장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시 스완의 인생사에 변곡점이 다가오게 된다. 1990년 여름, 당시 뉴올리언스 세인츠 스카우터로 일하면 톰 마리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의 엘리트 선수 스카우트 하고자 파견 나와있었다. 그리고 체육관과 운동장을 오가며 선수들을 관찰하던 마리노의 눈에 구석에서 혼자 엄청난 체격과 함께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며 훈련하던 스완을 보게 된다. 마리노는 스완을 보자마자 에릭 스완, 얘는 프로 레벨 재능이라고 직감한 뒤 바로 그의 지인이자 세미프로 팀인 베이 스테이트 타이탄스 딕 벨에게 전화를 걸어서 대학은 안 다녔지만 엄청난 원석 하나 발견했으니 지금 당장 이 선수 데리고 가라고 전했다. 그리고 바로 딕 벨은 스완에게 접촉하여 우리 팀으로 와줄 것을 설득했고 스완도 동의하면서 고향을 떠나 매사추세츠 주 린으로 이주하게 된다. 스완은 사실상 무급으로 팀에서 뛰었는데, 유일한 돈 버는 방법은 단장이 알아봐둔 일자리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당시 낮에는 전기 회사 파이프 나르기, 그리고 박람회장에 철제 놀이기구 조립으로 시급 5달러를 버는 게 유일한 수입이었다. 주 40시간 꼬박 일하면서 겨우 200달러 벌었지만 겨우 질 나쁜 동네의 모텔에서 지내면서 겨우 끼니를 채울 수 있었다. 참고로 당시 베이 스테이트 타이탄스는 세미 프로 리그로 마이너리그 미식축구 시스템(MLFS)에 속한 팀이었다. 이 팀은 주로 전직 고교 선수 출신의 직장인들이 모여 뛰는 아마추어 리그였는데 여기에 190cm, 140kg의 스완은 13살 사이에서 뛰는 23살 프로 선수 수준이었다. 그렇게 세미 프로 리그로 무대를 옮기며 어찌되었든 간에 미련에 남은 미식축구 커리어를 이어가기 시작한 스완은 1990년 여름, 입성하자마자 리그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당시 스완이 1990년 1시즌 11경기 뛰면서 남긴 스탯은 이러하다. 총 태클: 72개 쌕: 11개 펌블 유발: 4개 필드골 블로킹: 4개 당시 스완은 가진 피지컬이 너무 좋아서 DT/DE 하이브리드로 뛰었는데 그래서 상대 오펜시브 라인맨 2, 3명이 맨블로킹 하려고 와도 자신의 힘으로 누르며 달려들었다고 한다. 필드골 블로킹 역시 4개나 있는데, 이는 140kg 선수가 보통 할 수 없는 기록이었지만 리그에서 사기캐로 꼽히던 스완은 그딴 건 아랑곳하지 않고 필드 위를 장악했다. 얼마나 압도적인 성적을 보였냐면, 당시 스포츠 기자인 레이 디딩거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을 정도다. "차원이 다른 괴물이 동네 아마추어들을 학살하고 다닌다." 이후 시즌이 끝나자 단장 딕 벨은 스완의 경기 영상이 담긴 홈 비디오테잎을 NFL 구단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단들은 당시 하나 같이 세미프로들 사이에서나 뛰니까 저렇게 보이는 거라며 반신반의 했다. 이에 스완을 직접 데리고 가라고 연락했던 톰 마리노가 대학 리그를 통틀어도 이만한 인재가 없다는 내용을 수첩에 적은 게 프로 리그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하자 점점 스완에 대한 관심이 더 뜨거워지게 된다. 드래프트 내에서는 거의 오대수가 이우진을 궁금해하는 수준으로 미스터리한 남자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또또 스완 앞에 장애물이 생기는데, 바로 드래프트 입성 자격 문제였다. 당시 NFL 규정에는 고등학교 졸업한 지 3년이 지나지 않거나 대학 졸업반이 아니거나 중퇴 후 참가 선언하지 않은 선수들의 드래프트 참가 제한을 아주 엄히 하고 있었다. 스완은 당시 고등학교 졸업한지 1년 반 밖에 되지 않은 일반인 노동자 신분이었기에 저 셋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드래프트 참가조차 어렵다는 게 입장이었지만, 딕 벨은 여기에 허점을 발견한다. 벨은 스완이 대학 진학 의항서에 서명했으나 아예 입학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을 활용해 대학 중퇴자 규정을 적용시킬 수 없고, 일반인으로서 직업의 자유가 있음을 적극 어필했다. 이 사안은 결국 당시 NFL 커미셔너인 폴 태글리아부가 직접 결단할 정도로 중대했으며 최종적으로 태글리아부는 에릭 스완의 참가 자격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특별 허가했다. 1. 스완의 고등학교 졸업 동기들과 학업 년도는 서로 다르다. 스완은 4년을 다녔기에 사실상 1년 더 했다고 봐야 한다. 2. 세미 프로 리그에서 뛴 걸 프로에서 뛴 것에 준하는 경력으로 인정했다. 이렇게 스완은 딕 벨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1990년 겨울, 마침내 NFL 드래프트 참가 자격을 얻게 된다. 이는 NFL 역사상 최초로 NCAA 경력이 전무한 일반인에게 NFL 드래프트 참가를 특별 허가해준 선수라는 기록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에릭 스완은 대학을 다니지 않았기에 당시 리그 공식 컴바인에 초청받지 못했다. 팀들은 그의 정확한 신체 스팩, 운동 능력을 관찰하고 싶어했고 결국 오직 에릭 스완만을 위해 비공개 워크아웃을 가지기에 이르게 된다. 매사추세츠 주의 한 고등학교 체육관에 당시 28개 팀들 중 무려 27팀의 단장, 수석 스카우트가 직접 방문했으며 스완은 고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전국구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워크아웃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는 엄청났다. 키/체중: 6피트 3인치(약 190cm)/311 파운드(약 141kg) 40야드 달리기: 4.98초 벤치프레스: 225 파운드(약 102kg)을 무려 32회 들어올림 서전트 점프: 94cm 벤치 최고 무게: 400 파운드 이 결과는 당시 프로 레벨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기록이었으며 현장에 있던 당시 피닉스 카디널스 스카우트 총괄인 조 해니는 이렇게 회상했다. "스완이 달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저 거구가 저 속도로 달리는 건 물리학적으로 말이 안 됐다." 이 워크아웃 덕분에 에릭 스완의 드래프트 가치는 수직상승했고 미스터리 맨으로 여겨지며 2, 3라운드 조커픽으로나 여겨지던 선수는 하루 아침에 1라운드 중후반에 지명될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어떤 스카우트들은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하지만 가장 뛰어난 신체적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당시 스카우트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총평: 가장 완벽한 디펜시브 라인맨의 표본 피지컬 등급: 당시 NCAA 최고의 디펜시브 라인맨, 아웃랜드 트로피 수상자이자 1픽 후보인 러셀 메릴랜드 대비 순수한 운동능력, 신체 조건은 스완의 압승이다. 약점: 대학 경기 경험 부족으로 인해 전술 이해도가 부족하여 패스 러시 테크닉이나 블로킹을 읽는 세부 기술이 거칠다. 결국 테크닉은 프로에 와서 배울 수는 있겠지만 140kg이 4.98초 달리는 건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였기에 1991 드래프트 최고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유망주 평가를 받았다. 역시 처음에는 언론에서도 세미프로 리그 언플로 주목 받는 거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워크아웃 결과를 전해듣자 마자 태도를 급변하여 단숨에 당시 드래프트 최고의 씬스틸러로 급부상한다. 특히 그의 대학 진학 실패 사연, 이후 시급 5달러 받으면서 이역만리 세미프로 리그에서 뛰었던 스토리로 다루는 등 스완의 일거수일투족 드래프트 특집 기사로 대중들에게 스완의 인지도는 하늘을 찔렀다. 1991 드래프트는 오펜스 쪽에서는 심각한 흉작, 수비진에서는 역사적인 풍년이었다. 그나마 오펜스 쪽에서는 WR 포지션이 나름 대어들이 많았는데, 그 중 당시 압도적인 1픽이라는 평가를 받던 노트르담 대학 출신 스피드스터 라기브 'The Rocket' 이스마일이 있었다. 그 다음으로 압도적인 피지컬로 큰 기대를 받던 버지니아 대학 출신 허먼 무어, 그리고 운동능력과 프로에서의 컨택볼 캐치 능력은 드래프트 최고였던 테네시 대학 출신 엘빈 하퍼가 있었다. 그 외의 오펜스 포지션에서 주목받던 선수는 206cm의 거구이자 MLB 슈퍼스타 마크 맥과이어의 동생으로 주목 받은 쿼터백 댄 맥과이어 그리고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 의해 과학적 관리를 받아 쿼터백으로서 길러온 '로보 쿼터백' 토드 마리노비치가 있었다. 수비에서는 풍작이었는데, 단순히 대어만 많은 게 아니라 당시 두터운 유망주 풀을 자랑했다. 가장 저점이 높고 실패 확률이 적은 유망주로 평가 받은 마이애미 대학 출신 DT 러셀 매릴랜드, NCAA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며 당시 최고의 수비수 상까지 쓸어가면서 Top 5픽 평가받은 네브레스카 대학 출신 OLB 마이크 크로웰 넓은 수비 범위와 강력한 태클 능력, 그리고 올 아메리칸 선정 탑 급 수비수 유망주인 DB 에릭 터너 대학 최고의 락다운 코너백이자 당시 최고의 리시버들을 모조리 지워버렸던 CB 브루스 피킨스 로켓 이스마일과 함께 노트르담 프로그램의 양대 핵심이자 고교 육상 선수 시절부터 주목 받던 뛰어난 스피드, 운동능력을 자랑하는 CB 토드 라이트 그리고 드래프트 막판 최고의 씬스틸러이자 DL 포지션에서 가장 완벽한 조건을 갖췄지만 데이터가 전무한 '미스터리 맨' 에릭 스완이 있었다. 드래프트 일주일 전에는 스완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게 되면서 1라운드 15번 이내로 들어간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오기에 이른다. 이때 드래프트 하루 전날, 드래프트 판도를 뒤흔들 사건이 터지게 된다. 바로 1991 드래프트 가장 유력한 1순위 유망주로 평가 받은 라그브 이스마일이 캐나다 풋볼 리그(CFL) 소속팀인 토론토 아르고노츠에 4년 최대 2,600만 달러에 계약하면서 드래프트 참가 철회를 하게 된다. 참고로 당시 토론토 아르고노츠는 웨인 그레츠키가 공동 구단주로 있던 팀이었으며 이스마일이 받은 4년 2,600만 달러는 프로 풋볼 역사상 최고 액수 계약이었다. 그는 그의 구단주인 웨인 그레츠키보다도 돈을 더 많이 버는 선수였다. 이스마일은 드래프트 전날 밤까지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댈러스 카우보이스랑 계약 협상을 벌였지만 지명 직전 최종 결렬되면서 때마침 CFL 소속 토론토 아그로노츠가 이 상황을 보자마자 바로 채간 것이다. 여담으로 1991 드래프트에서 이스마일은 형식 상으로나마 LA 레이더스에게 4라운드 100번째 픽으로 지명받았고, 나중에 NFL로 돌아올 때 LA 레이더스를 통해 데뷔하게 된다. 결국 드래프트 당일, 이스마일이 공식적으로 CFL 진출을 선언하면서 드래프트 판도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1픽을 가지고 있던 카우보이스는 이스마일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차선책으로 당시 감독 지미 존슨과 대학에서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선수이자 지미 존슨 역시 실패 확률이 적은 선수로 공인한 마이애미 대학 출신 DT 러셀 메릴랜드를 지명했다. 사실상 가장 뛰어난 유망주가 빠지자 공격진은 더 별볼일 없는 수준의 흉작으로 평가받았으며 2픽부터 5픽까지 팀들이 계속 수비수들을 지명하게 된다. 2픽으로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는 UCLA DB 에릭 터너를 지명한다. 3픽으로 애틀란타 팔콘스는 네브레스카 대학 출신 CB 브루스 피킨스를 지명한다. 4 픽으로 덴버 브롱크스는 네브레스카 LB 마이크 크로엘을 지명한다. 5픽으로 LA 램스는 노트르담 대학 출신 CB 토드 라이트를 지명한다. 이제 6픽으로 접어들었고, 서서히 주목은 과연 누가 미스터리 맨을 지명할 것인가로 바뀐다. 6픽을 가지고 있던 팀은 당시 피닉스 카디널스였다. 그리고 램스가 막 지명한 토드 라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끝날 무렵 당시 ESPN 중계진이 에릭 스완이 전화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드래프트 날 전화를 받았다는 건 지명하겠다고 전화한 것이기 때문에 벌써 에릭 스완을 지명하는 반응에 놀라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진짜로 에릭 스완은 무려 NCAA 경험이 단 1도 없지만 역사상 최초로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일반인 세미프로 선수가 되었다. 시급 5달러에서 연봉 100만 달러 인상에 혈당 스파이크 온 스완의 모습이다. 이 모습을 두고 스완은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그 순간의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주변의 모든 풍경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느린 화면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펄쩍펄쩍 뛰었다. 미식축구 역사가 새로 쓰이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아무도 깨지 못했던 단단한 장벽을 완전히 부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리그의 새 역사를 쓴 에릭 스완은 전격으로 카디널스가 되었다. 근데 카디널스는 혹여나 에릭 스완이 딴 맘 가지거나 다른 문제가 생기기 전에 바로 계약을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1991 드래프트가 끝나고 사흘 만인 1991년 4월 24일, 카디널스는 에릭 스완과 5년 총액 400만 달러로 계약한다. 여기에 사이닝 보너스가 150만 달러였고 첫 해 연봉만 78만 달러였으니 한 순간에 대박난 것이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 전 에릭 스완 앞에 또또또 장애물이 생기게 되는데, 바로 그의 은인이던 딕 벨이었다. 당시 에릭 스완은 딕 벨을 자신의 인생을 구해준 은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스완은 당시 감사의 의미로 딕 벨을 그의 공식 에이전트로 선임하게 된다. 하지만 스완이 카디널스와 4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이 관계는 예상치 못한 파탄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딕 벨은 스완이 계약에 사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고 스완에게 지급될 사이닝 보너스 150만 달러 중 5%인 7만 5000달러를 수수료 명목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NFL 리그, 그리고 NFLPA 규정에 의하면 에이전트는 선수가 구단으로부터 실제로 돈을 수령하기 전에는 수수료를 미리 가져가거나 요구를 할 수 없었다. 또한 딕 벨은 NFLPA 정식 인증 에이전트가 아니라는 논란까지 생겼다. 이에 압박감을 느낀 딕 벨은 스완에게 빨리 자신의 수수료를 달라고 닥달했고 이에 스완이 벨을 해고하려고 하자, 계약 위반이라며 소송하겠다고 협박했다. 벨의 행보에 큰 배신감을 느낀 스완은 결국 변호사까지 선임해가며 딕 벨을 상대로 수수료 지급 중지 및 에이전트 계약 무효 소송을 걸었으며, 동시에 NFLPA에 딕 벨을 고발했다. 결국 협회 측은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조사 결과에서 벨의 규정 위반 사항이 드러나 스완에 대한 수수료 지급 중지 및 에이전트 자격 박탈과 계약 무효를 받아냄으로서 딕 벨에게 단 한 푼도 내주지 않고 사이닝 보너스 150만 달러를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겨우겨우 사이닝 보너스를 지켜내는데 성공한 스완은 이후 150만 달러가 입금되자 이후 바로 부모님께 지금까지의 보은을 실천한다. 먼저 부모님께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넓고 번듯한 고급 단독 주택을 현찰로 구매했다. 그리고 아버지께 고급 세단, 어머니께 고급 SUV 차량을 현장에서 현찰로 결제 후 차량 인도까지 직접 맡았다. 이후 자신에게 투자를 하기 시작했는데, 평소 관심이 많던 옷과 차에 투자를 했다. 먼저 당시 부호들이 타고 다닌다는 메르세데스 벤츠 560 SEL를 풀옵션으로 구매했다. 이는 스완 자신이 편하게 직접 운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차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뉴욕, 피닉스의 양복점에 직접 커스텀 정장을 여러 벌 주문하였으며, 금목걸이와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도 구매했다. 카디널스 팀 훈련 참가 및 프로 생활을 하기 위해 피닉스 주의 외곽 부촌에 자신이 살 목적으로 마당 딸린 대저택도 계약하는 건 잊지 않았다. 그렇게 에릭 스완은 모든 게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고 1991년 5월 카디널스 루키 미니캠프에 향한다. 당시 에릭 스완을 향한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는데, 카디널스 베테랑 선수 뿐만 아니라 신인 선수들 역시 스완을 은근 무시하고 깎아내리기 바빴다. "대학 구경도 못 해본 세미프로 짜바리" 라는 시선이 팽배했다. 하지만 캠프 첫날 보호패드 차고 진행한 스크린 몸싸움 훈련 세션에 바로 모두가 스완의 재능에 감탄하게 만들었다. 당시 상위 라운드 지명 받은 오펜시브 라인맨과 에릭 스완이 1대1 몸싸움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스완은 상대 오펜시브 라인맨을 순수히 힘 하나로 아예 끝까지 밀어버리거나 상대 공격수가 블로킹을 하기도 전에 압도적인 첫 스텝으로 돌파해 버리거나, 아예 공격수를 뒤로 밀어내 쿼터백 역할의 마네킹을 번번이 박살냈다. 이 훈련을 지켜보던 당시 피닉스 카디널스 감독인 조 부겔 감독은 이후 자신의 도박이 옳았으며 진짜 재능을 데리고 왔다는 것을 회상했다. 하지만 이 모습이 오래 가지 못하게 된다. 에릭 스완은 당시 세미 프로리그에서 뛰었던지라 그 리그에서의 투박하고 단순한 전술에 익숙했다. 그래서 프로 레벨 오펜시브 라인맨이나 상대 선수들이 보이는 정교한 하체 블로킹 기술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게 없었다. 그때, 훈련 도중 상대 공격 라인맨의 블로킹을 받아내며 방향을 급격하게 전환하는 순간 스완의 오른쪽 무릎에서 뚝하는 소리를 내며 필드 위에 쓰러지게 된다. 해당 부상은 오른쪽 무릎 연골(외측 반월상 연골)이 심하게 파열되는 중상이었으며, 에릭 스완은 바로 병원으로 가서 절제술 수술을 받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 부상의 경우 보통 복귀까지 현대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절제술의 경우 2-6개월이 걸렸지만 1990년대의 경우, 복귀까지 기본 4주는 걷지도 못하고 복귀에는 4개월에서 시즌의 절반 정도를 잡아야 했다. 스완의 부상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피닉스 지역 언론과 전문가들은 일제히 구단과 스완에 대해 연일 비판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대학 무대에서 검증 한 번 받지 않더니 바로 프로의 템포를 견디지 못하는 400만 달러짜리 낭비로 평가 받았으며 이러한 비난 속에서도 수술 후 스완은 정규 시즌이 시작될 때까지 팀의 라커룸 구석에서 홀로 얼음찜질과 재활 훈련에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의 피지컬은 회복력도 해당하는 건지 약 4개월 만인 1991년 9월 29일, 마침내 필드에 복귀하는데 성공한다. 데뷔전 상대는 당시 안드레 티펫이 주축으로 이끄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스완은 그 경기에서 비록 선발 라인업에 들지 못했지만 저 부상을 당하고도 최소한의 기간으로 복귀를 한다는 건 당시로서는 엄청난 회복력을 가진 인간이라는 평가받았다. 그리고 이후 1991년 10월 13일, 바이킹스 vs 카디널스 원정 경기에서 에릭 스완은 꿈에 그리던 NFL 경기에서 첫 선발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이 경기도 비록 7-34로 졌지만 그래도 첫 선발 출전으로 풀타임 소화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커리어 첫 쎅은 그 다음 경기인 카우보이스 전에서 나오게 되는데, 전반전 끝나기 직전 피닉스 49야드 라인 지점에서 트로이 에이크먼을 쎅하면서 커리어 첫 쎅을 기록하게 된다. 이 경기도 7-27로 패배하긴 했지만 팀이 기록한 4개의 쎅에 기여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4개월만에 바로 복귀한 선수치곤 너무 쌩쌩했으며 무려 루키 시즌에 12경기를 나서는데 성공했다. 완전히 회복한 무릎이 아님에도 12경기에서 4개의 쎅을 기록했다. 부상 직후 자신을 비난하던 여론에 한 방 먹이는데 성공했으며 왜 자신이 최고의 유망주 중 1명이었고 6픽으로 카디널스가 지명한 이유를 그래도 증명해낸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상에서의 회복 여파가 있었기에 2년차에 좀 더 스탭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1992년 오프시즌에 에릭 스완은 팀 훈련 시설에서 자기 관리를 독하게 하기 시작했다. 특히 몸무게를 145kg에서 133kg 수준으로 낮췄고 근육 비중도 크게 늘렸다. 또한 부족한 테크닉을 익히고자 당시 최고의 디펜시브 라인맨 선수인 레지 화이트랑 코르테즈 케네디의 플레이 영상을 수천 번 돌려보며 손기술과 풋워크를 익혀갔다. 그리고 그 노력은 2년차부터 바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2년차 성적은 16경기 전경기 출장, 팀 내 최다 태클인 70개, 4개의 펌블 유발, 그리고 2개의 쌕을 기록하면서 작년에 비해 정말 크게 실력 향상이 되었다. 당시 2년차 시즌을 마치고 조 부겔 카디널스 감독은 에릭 스완은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올프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선수라며 성장에 크게 칭찬했다. 하지만 그 다음 시즌인 1993 시즌에는 9경기에 나서서 3.5개의 쌕, 47개 태클, 1개 세이프티, 1개의 펌블 유발 스탯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이어갔지만 무릎 상태가 또 나빠지면서 11월 중순 이후 IR에 등재했으며 나머지 7경기는 모두 결장하면서 허무하게 3년차 시즌을 마무리한다. 에릭 스완은 프로 데뷔 후 3년 간 4번의 무릎 수술을 해야 했으며 이 때문에 인저리 프론 선수로 여겨졌다. 이듬해인 1994 시즌, 카디널스는 오프시즌 동안 조 부겔 감독을 해임하고 휴스턴에서 수비 코디네이터로 일하던 버디 라이언을 새 감독으로 데리고 오게 된다. 특히 버디 라이언은 트랜치에서 밀어붙임으로서 프레셔를 넣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감독이었기에 이는 에릭 스완 같은 불러쉬에 능하고 첫 스탭 순발력이 좋은 선수들에게는 아주 큰 호재였다. 버디 라이언도 역시 에릭 스완을 아주 좋아했는데, 스완을 보고는 자신이 평생 본 디펜시브 라인맨 중 최고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라이언의 수비 스킴 속에 에릭 스완 역시 건강하게 복귀하는데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타 반열에 오르기 시작한다. 3년차 성적은 16경기 전경기 선발 출장, 1개 인터셉션, 1개의 펌블 유발, 7개의 쌕, 71개 태클, 1개의 세이프티 유발이었다. 이후 1994 ~ 1995 시즌에 해당하는 4년차, 5년차 역시 디펜시브 라인맨으로서의 훌륭한 모습을 이어가며 자신의 최전성기를 구가했으며, 리그 최고의 디펜시브 라인맨 중 1명으로 자리 잡는다. 해당 구간 동안 2번 프로볼 선발, 13.5개의 쌕 기록, 134개의 태클, 5개의 펌블 리커버리를 기록했으며 4년차 당시 버디 라이언은 스완은 레지 화이트보다 강하고 빠르다고 할 정도로 폼이 절정에 달했다. 1997시즌이 끝나자 에릭 스완은 첫 계약이 끝나면서 FA 시장으로 나오게 된다. 명실상부 팀 내 최고 에이스였으며 동시에 리그에서 제일 가는 디펜시브 라인맨이었으며 나이도 고작 27살 밖에 되지 않았기에 당시 FA 시장 최대어로 꼽히게 된다. 하지만 카디널스는 아무리 짠돌이로 굴어도 저 재능은 도저히 놓칠 수 없었는지 1998년 2월, 에릭 스완에게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 대우를 해주며 5년 2500만 달러로 재계약한다. 이는 구단 역사상 최고 금액 계약이자, 최고 연봉, 가장 많은 사이닝 보너스인 750만 달러 지급했으며 동시에 리그 역사상 디펜시브 라인맨 최고 금액, 최고 연봉 대우였다. 이 계약 소식은 그야말로 리그를 뒤집어 놓았는데, 특히 카디널스가 저런 대우까지 하면서 잡을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당시 스완의 에이전트로 일하며 이 계약을 이끌어낸 스티브 주커는 이 계약이 FA 시장의 역사를 뒤바꿀 계약이라며 기뻐했으며 동시 구단들은 곧 FA로 풀릴 동포지션 선수들인 대나 스터블필드랑 존 랜들의 몸값이 어디까지 갈지 큰 우려를 표했다. 팬들 역시 반응이 갈리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구단주가 엄청 짠돌이로 굴었지만 드디어 돈 쓰는 것에서 큰 환호성을 보냈다. 하지만 만성적인 무릎 부상을 달고 사는 선수한테 무려 5년 계약, 최고 연봉 대우를 할 가치가 있냐를 두고 너무 무모하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또한 미디어 역시 이 계약에 시급 5달러 청년에서 리그 최고 연봉 수비수가 되었다는 서사로 연일 스포츠 뉴스 헤드라이트를 장식했다. 이 당시 아메리칸 드림으로서의 서사와 인간 역전 스토리는 정말 완벽하기 그지 없던 셈이었다. 그렇게 리그 최고 대우를 받으며 다음 시즌인 1998 시즌이 개막했지만 스완은 웃을 수 없는 일이 생기고 만다. 1998 시즌 첫 7경기 동안 4개의 쌕을 기록할 정도로 계약 직후 여전히 리그 최고의 디펜시브 라인맨으로 날아다녔지만 또또 고질병이었던 오른 무릎쪽 통증이 악화되면서 다시 수술대로 오르게 되었으며 결국 부상자 명단(IR)에 이름을 올리면서 시즌 아웃을 당하고 만다. 참고로 1998 시즌 카디널스는 애리조나로 연고지 이후 처음이자 1982 시즌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해냈으며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20-7로 이기기까지 하며 1975 시즌 이후 최초로 디비저널 라운드까지 갔기에 팀 내 최고 선수인 에릭 스완이 없었던 건 상당히 큰 악재였다. 또한 스완이 뛰기만 했으면 신데렐라 스토리를 그리며 컨퍼런스 챔피언쉽 경기까지도 어쩌면 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완은 시즌 아웃을 당하고 팀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사이드라인에서 지켜만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즌을 허무하게 마감하며 계약 첫 해부터 자신이 가지던 약점을 크게 노출한 스완은 이미 무릎 상태가 앞서 말했다시피 사실상 제기능을 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오른 무릎 연골이 거의 다 마모되어 뼈끼리 서로 부딪힐 정도였는데, 이 때문에 다시 건강하게 뛰려면 또 도박수를 감행해야 했다. 그래서 1998 오프시즌에 에릭 스완은 당시로서는 생소하고 회복률도 낮은 미세골절 수술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처럼 회복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상당히 길고 혹독한 회복, 재활 기간을 거쳐야 했고, 1999 시즌 팀 트레이닝 캠프, 정규시즌 전반기를 모두 날리게 된다. 이후 후반기 7경기에 돌아오긴 했지만, 이미 무릎은 제대로 굽힐 수 없을 정도로 회복이 더뎠으며 전성기의 폭발적인 첫 스탭, 그리고 불도저 같은 힘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1998, 1999 시즌 동안 스완은 도합 16경기 출장, 5경기 선발 출장을 하면서 41개 태클, 8개의 쌕, 1개의 인터셉션을 기록하는데 그친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스완의 연봉은 팀 내 최고 수준이었다. 결국 그의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전과 같은 상태가 아닌 걸 받아들인 카디널스는 2000년 7월, 팀 트레이닝 캠프 시작 직전에 에릭 스완을 전격 방출한다. 에릭 스완에게 역사적인 5년 2,500만 달러 계약을 안겨준지 고작 2년 5개월 만의 일이었다. 스완의 계약은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경고가 적나라하게 적중했다. 스완은 방출을 당하긴 했지만 여기서 자신의 커리어를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방출 당한지 2주 만에 고향팀인 캐롤라이나 팬서스와 1년 베테랑 미니멈 수준의 계약에 합의했다. 그곳에서 같은 해에 역시 팬서스로 이적한 레지 화이트와 한 팀이 되는 오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2000 시즌, 스완은 16경기 전 경기 출장하는 투혼을 보이지만 3경기 선발 출장, 10개의 태클, 1개의 쌕, 2개의 TFL를 기록하는데 그친다. 2000 시즌이 그렇게 지나가고 스완은 자신의 몸이 더 이상 프로 레벨에서 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직감하게 되고 고작 만 30살이라는 나이에 공식 은퇴를 선언한다. 세미 프로 리그에서 고작 시급 5달러를 받으며 뛴지 10년만의 일이었다. 은퇴 후 에릭 스완은 미식축구랑 거리를 두며 아주 조용하게 살아가게 된다. 따로 SNS, 해설, 코치 등의 지도자 경력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으며 1998년 세미 프로 풋볼 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과 2007년 37살의 나이로 북미 풋볼 리그(NAFL) 소속 세미 프로 팀인 허드슨 밸리 세인츠로 1시즌 깜짝 복귀해 자신을 키워준 세미 프로 리그에 대한 애정으로 가볍게 경기를 뛴 것을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전해진 근황은 없다. 스완은 자신이 프로 시절 벌어들였던 막대한 자산을 바탕으로 현재까지도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 주 파인허스트에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나마 가장 최근 언론에 등장한 건 2024년 NFL 컨퍼런스 챔피언쉽 매치업과 슈퍼볼 매치업에 대해서 폭스 스포츠 1340AM에 특별 게스트로 초청되어 이야기 나눈 게 그 근황이다. 에릭 스완은 NFL 역사에서 가장 유니크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 중 1명이다. 대학을 성적 때문에 진학하기를 거부하고 배관공 겸 세미 프로 리그 선수로 뛰며 시급 5달러 겨우 벌며 살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NFL 드래프트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미스터리하면서 동시에 최고의 유망주로 꼽힌 사람이 되었으며 데뷔 후에 재능을 만개하여 2번의 프로볼, 그리고 당시 리그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대우를 받다가 2년 5개월만에 방출당하여 30살 이전에 은퇴하기까지 정말 많은 풍파를 겪어왔다. 이처럼 대학 리그를 1경기도 뛰지 않고 1라운드 Top 10 지명을 받은 최초이자 마지막 선수가 될 선수 NFL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하고 당대 최고의 수비수 재능 중 1명으로 에릭 스완이 기억되지 않을까 한다. 암튼 에릭 스완의 앞으로를 응원하며 마무리한다. JUST WIN BABY 출처: 미식축구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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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둥근바닥님의 댓글

  • 둥근바닥
  • 작성일
별에별 일이 다있네

버부게님의 댓글

  • 버부게
  • 작성일
잘 보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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